목차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줄거리 자체가 코멘트. 그것이 성장이란 것을 알까. 보울라와 알렉산더를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이해. 보울라와 알렉산더를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위로.
본문 보울라와
알렉산더를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위로. 결국 이 영화는 희망고문이다. 라고 말했던 나기에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슬픔을 갖게
됐고, 그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 그렇다고 기쁨으로 이어지지도 않는 모순의 과정을 밟은 거고, 무수히 많은 경우의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굉장히 큰 범위의 포괄적인, 사랑을 알기 위한 과정이었던 거야.’라고 밖에 말해줄 수 없어서, 내가 지켜본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고민해봤다. 나무 앞에 아이들은 행복할까?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에서 찾은 답이 나무가 맞는 걸까? 그리고 이렇게 바랄 수밖에,
너희들이 마주했던 파란 안개에 차갑게 젖는 일만 있지는 않길, 마주했던 황량했던 길을, 밤을, 지나치던 차들을, 멈춰 선 어른들을 이해할 수
있길. 또 내가 지어 놓은 나무의 이름이 맘에 들기를.
본문내용 했다. 집에 돌아와 다운 받은 뒤 ‘어쩔 수 없이.’
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틀었다. 영화의 감독은 테오 앙겔로풀로스로 숱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사람이란다. 영화는 그의 88년도 작품이라고.
‘안개 속의 풍경’은 예술영화로써 그 당시엔 굉장히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예술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닌 나에겐 생소한 감독 이름과 영화
제목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틀고부터 보는 내내 나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가슴을 졸여야했다. 다 본 후 이해가 안 되는 몇몇 장면은 돌려
보기도 하며 예술영화란 이런 것일까 싶은 마음을 가졌다. 길게 말할 것 없이 결론은 영화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건 보고나서 다른
활동을 재 빨리 할 수 없게 한다거나, 침대에 앉아서 한동안 일어날 수 없게
만든다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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