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주변에 놓인자는 일시적으로 실현된 패권의 진리가 아니라 그것이 모두 무너져 흩어진 다음에도 남아 있을 원자의
진리를 구한다. 패권의 진리를 거부하는 그는 생명의 원자, 다름 아닌 모나드 곧 생명 개체의 깊이에 새겨진 억 년의 경험과 감각에 다가오는
연원의 접점, 현재에서 재현한다.-<<안티호모에렉투스>>>
내가 막연히 기대하던 한국의 그것, 내가
막연히 자랑스러워하던 한국의 그것을 박동환이 이렇게 표현해 주었다. 규정짓지 않아, 연체동물처럼 너무나도 유연하여, 그 형상이 사라진듯 하지만,
그 변형자체가 그 형상일 수 있는 생각. 제국주의시대에 동양평화론을 쓴 한국인처럼, 뭣 모르는 순진한 어린아이 같기도, 지금의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잘보여 도리어 소통이 힘든 선각자 같기도 한 한국인. 아무려면 어때. 좋은게 좋다라는 말이 꽤나 자주 들리던 이곳.
그러면서도 때로는 온 국민이 모여 격렬하게 저항하고, 관군이 아닌 의병이 지켜내던 이곳, 바로 이곳이 내가 태어나고 또 자란
나라이다.
본문내용 는 것은의 답을 찾기 위해서. 때때로 밑줄을 치고 파란글씨를 보았다. 나보다 앞서 고민했던
사람이 달아 놓은 글들을. 그리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한동안 시를 볼 일이 없었다. 집에 두세권의 시집이 있긴 하지만, 엄마가 시가
별거냐는 아마추어 시인이지만, 시를 읽는 다는 것은 참으로 낯선 일이었기 때문이다. 바빴던 것도 아니다. 심심해서 미국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하고, 뭐했나 싶게 멍하게 티비만 본 날도 있었도 그런데도 2년이 넘게 시를 읽지 않았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벽에 있는 글들을 읽은 것을
제외하고는. 추천을 받았다며 한권의 책을 언니가 가져 왔다.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강신주 때마침 시간이 남아돌고,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랑 친해진지 1년차라 책장을 넘겼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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