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송두율 교수가 독일에서 유지할 수 있었던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그가 한국행을 택했을 때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스스로가 경계인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가 하는 말은 개인의 말로서 한정적인 무게의 말이며 넓게 울리지 못하는 말이다. 어떠한 집단의
대표성을 띄지 못하는 경계인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고 집단 안으로 편입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위험성은 입국 초기부터 경계인으로서의 그의 위치를 뒤흔든다. 그가 한국의 법 질서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그는 이미 경계인으로서
정체성을 내어준다고 할 수 있다. 집단 밖에 있어야 할 경계인이 집단 안의 법 질서 안으로 들어오고자 하면서, 그는 남과 북을 중재하는 커다란
화해자의 위치에서 한국사회 안에서 북한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진보적 학자의 위치로 좌천된다. 이에 따라 그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위치의
외부인에서 마음대로 처벌할 수도 있는 내부인으로 변한다.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조사과정, 재판과정이 진행되면 될수록 파헤쳐지고 망가진다.
경계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순 가장 큰 힘은 언론이다. 수사과정이 진행되는 것과 같은 속도로 수사를 보도하면서 언론은 송두율 교수가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철저하지 못한 진술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것은 송두율이라는 사람이 가진 고민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계속 변명하고 거짓말하는,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이미지는 “거물 간첩”이라는 수사의
진행방향과 맞물려 그에게 회복할 수 없는 이미지의 타격을 주었다. 그가 북한에서 김철수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노동당에
본문내용 스로 집단만의 고유한 속성을 지니게 된다. 집단의 속성은 개인이 집단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인식하게 해 줌으로서 집단이 스스로를 존속할 수 있게 해준다. 집단 안에 흐르는 이 거대한 경향성은 그것에 반하는 개인을 억압한다. 마치
생물처럼 스스로의 존재를 위협하는 집단안의 타자를 배제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이러한 속성이 더욱 강력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라고
인식했던 국가가 나뉘어 한 쪽은 사회주의, 다른 쪽은 자본주의 체제를 이룩하면서 서로를 부정하는 형국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전쟁은 서로에 대한
부정을 더욱 확고한 구조로 만들었다. 교류가 끊어진 분단선을 사이로 각자의 집단의 자신의 속성을 더욱 강화했고 자기 안의 타자를 무조건 배척하는
입장을 취해왔었다. 이러한 배타적 구조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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