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동영상 내용의 요약 2. 현대의 역사가, 언론 1)언론의 자유 보장 2)언론인의
책임감 3.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 한편,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같은 시간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전혀 알지
못했다. 외국의 언론은 통제되고 있었고, 해외로부터의 전화 등 국외 통신은 원활하지 못했다. 광주는 군에 의해 봉쇄되고 외부 지역과의 모든
정보가 두절되어 있었다. 언론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침묵했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기사를 실었는데, 그마저도 광주의 시민들을 북한 괴뢰 집단,
폭도, 간첩 등으로 규정하여 진실을 은폐왜곡했다. 군대에 의한 시민 살해를 정당화하였으며 진실은 유언비어라 하며 호도하였다. 하지만 언론사
내부에서는 애당초 광주의 모든 진상을 알고 있었다. (중략) 신문과 잡지가 일일(一日)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언론매체 본연의
기능이다. 1980년 당시 외국 매체의 기록은 당시 우리의 언론매체가 방기하거나 왜곡했던 역사 기록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수행하여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 정리에 도움이 되는 소중한 자료를 많이 남겨놓았다. 진실을 밝히고자 목숨을 건 독일의 한 기자와 진실을 숨기고자 협잡을 일삼은 당시
한국 언론인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상기하며 현대의 역사가라 할 수 있는 언론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본문내용 위르겐 힌츠페터를
중심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조명한다. 당시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일어난 광주의 시위에는 공수부대가 투입되었고,
그들이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하고 민간인을 학살함으로써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였다. 힌츠페터는 도쿄 특파원으로 일본에 체류하다, 한국
어딘가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하고는 광주 땅을 밟는다. 그는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광주에 발을 들였으나 그가 목격한 것은
베트남전쟁보다도 더 잔인한 참상이었다. 군인들의 총과 대검, 군홧발에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이 쓰러져 죽었고, 거리에 시체가 뒹굴었으며, 희생자의
가족들은 줄줄이 놓인 관을 부둥켜안고 오열하였다. 힌츠페터는 그러한 당시의 상황을 철저히 촬영하고, 소지품 검사에 걸리지 않도록
쿠키
참고문헌 김성재, 「독일 신문과 잡지에 나타난 5.18 광주민중항쟁 보도」, 『민주주의와 인권』4,전남대 5.18
연구소,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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